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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짜장면을 모르고 있을까? 그 이유

by 다솜솜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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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짜장면의 역사

한국에선 중국 음식으로 알고 있고 중국에선 한국 음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짜장면이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와 중국의 짜장면이 형태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짜장면의 맛을 결정하는 소스인 '춘장'이라는 말도 중국에서는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짜장면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게 되면 작장면이 되는데 이는 장을 볶은 면이라는 뜻으로 여기에는 중국에서 전해지는 한 이야기가 있다. 기원전 210년경 폭군으로 유명했던 진시황은 면 요리가 유명했던 중국 산둥 지역에 방문하여 가장 요리를 잘한다는 사람을 찾아내 자기 앞에서 맛있는 면 요리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참고로 산둥 지역은 중국의 최대 밀 생산지로서 일찍부터 다양한 면 음식이 발달한 곳이다. 이때 요리사는 삶은 면에 어떤 장을 그냥 얹어서 낼 생각이었지만 진시황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온전한 정신력을 유지하지 못했고 장을 기름에 볶아버렸다고 한다. '기름에 볶는 과정은 사실 필요 없는 것이었다'라고 진언하면 죽을 것 같아서 요리사는 '신메뉴'라고 말하며 볶은 장을 그대로 면 위에 얹어서 낸 뒤 진시황이 이를 맛보고 맛이 좋다며 칭찬했다고 한다. 이때 요리사가 넣었던 어떤 장은 산둥 지역의 원산지로 중국에서는 '면장'이라 불리는 것인데 콩과 밀가루를 원료로 메주를 띄워 만드는 중국식 된장이다. 이 면장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춘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인데 이 기원에는 다양한 속설이 있지만 그중 산둥 지역 사람들이 면장의 대파를 찍어 먹으며 이에 파 '총'자를 써서 총장이라 했으며 이 총장이 춘장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면장을 볶아서 얹은 면 중국의 작장면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짜장면이 되었다. 

2. 짜장면 형태의 변화

지금 중국 본토와 우리나라의 짜장면은 형태가 매우 다른데 중국 베이징과 산둥 지역에서 먹는 자장면은 삶은 면, 볶음 면장 그리고 갖은 야채를 얹어 비벼 먹는 간단한 가정식이다. 주로 여름철에 시원하게 즐기는 비빔국수라고 한다. 1882년 임오군란을 진압하러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고 이때 40여 명의 청상인들이 들어와 체류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화교 역사가 시작된다. 청군을 지원하는 인물을 가지고 들어온 이들이었으나 주둔 기간이 길어지며 조선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했다. 또한 조선과 청나라 간 각종 장정들의 발효와 청해 거류지 영사관이 설치되며 많은 산동 출신 화교들이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어 주로 무역업에 종사하던 이들 중 진군과 인력법군 등 비숙련 노동자들도 많았으며 이들을 상대로 간편히 비벼 먹을 수 있는 짜장면 노점상이 생기고 또한 정착한 화교들이 직접 고향 음식인 짜장면을 만들어 먹으며 한반도에 짜장면이 들어오게 되었다. 한반도에 들어온 짜장면은 두 가지 큰 변화를 통해 한국식 짜장면으로 변해 모든 한국인에게 사랑받게 되는 첫 번째 이유는 화교 사회의 변화이다. 19세기말 조선에 정착하기 시작한 화교들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미군정 때까지 주로 무역을 기반으로 한 상업 활동을 해왔고 이보다 비중은 적지만 농업과 요식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며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단절하게 되고 이때 일자리를 잃은 많은 화교 무역상들이 중국 음식점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1960·70년대 외국인 토지 소유권을 박탈하거나 규모를 제한하는 법률들이 제정되며 농촌에서 채소를 재배하던 상당수의 화교가 다른 화교들처럼 음식점을 내기 시작하였고 이때 고급 요리를 만들 스킬이 없던 이들은 중국 요리 중 조리법이 그나마 수월했던 우동, 짬뽕, 짜장면 등을 메인 메뉴로 내세운 소규모의 중국 음식점을 차리게 즉 한국 대다수의 화교가 생계를 위해 요식업으로 전업하여 짜장면을 파는 중국 음식점 급증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한국 정부의 혼분식 장려 운동을 통한 밀가루 음식의 대중화이다. 기후 특성상 밀 재배가 어려웠던 한반도에서는 쌀 중심의 식문화가 자리 잡았다. 전통적으로 귀한 음식 재료였다. 밀가루 면에 거기에 밀가루로 만든 면장이 소스로 얹어지는 짜장면은 애초에 거리감이 있는 음식이었다. 1955년 미국과 체결한 미국 공법 제480호에 따라 1956년부터 미국에 잉여 농산물이 원조로 제공되기 시작했고 이때 밀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였다. 그런데 쌀이 주식이었던 우리나라였기에 쌀은 부족한데 밀을 비롯한 미국의 원조 곡물이 쌓여만 가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에 정부에서 10여 년 동안 진행했던 것 혼분식 장려 운동이었다. 모든 식당에 잡곡이나 국수를 혼합하여 판매하도록 했고 또한 일주일 중 이틀을 분식의 날로 정해 이날은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도록 규제하기도 했다. 참고로 요새 설렁탕에 국수가 들어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배경들 속에서 짜장면은 급속도로 대중화되었으며 또한 정부의 갖가지 규제로 인해 1970년대 많은 화교가 미국과 대만으로 이주하여 중국 음식점 경영자들이 한국인으로 빠르게 교체된 점, 1992년 새로운 국교 수립 이전까지 한국과 중국이 단교했다는 점, 그리고 뜨거운 국물을 사랑해 왔던 민족이라는 점 등이 합쳐져 짜장면은 본토의 물이 거의 없는 비빔국수 형태에서 뜨겁고 물이 많은 지금 형태의 한국형 짜장면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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