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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의 역사와 음식 활용

by 다솜솜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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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에의 역사

어릴 때 컵에 담긴 번데기를 맛있게 먹었거나 먹지 않았더라도 한 번쯤은 봤을 거다. 툭 터지는 식감과 특유의 고소함 때문에 먹었던 이 번데기의 정체는 이것이기 때문이다. 번데기는 누에다. 한 마리 누에가 고치를 만들기 위해 토해내는 실의 길이 1500에서 1700m가량이나 된다고 한다. 몸의 40%가량을 채우고 있던 이 실들을 토해낸 누에는 몸이 많이 작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고치 속에서 건기가 된다. 이 고치를 삶아 실로 뽑아낸 것이 바로 비단의 재료가 되는 명주실이며 이때 동시에 삶아진 번데기가 바로 우리가 먹는 번데기이다. 참고로 삶아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번데기에서 우화 하면 나방 고치를 뚫고 나오는데 그럼 누에나방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은 고치를 사용하면 되지 않냐?'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누에나방이 뚫고 나온 구멍 때문에 실을 뽑아낼 뚝뚝 끊겨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비단을 위해 누에를 사육했던 건 약 5천 년 전까지 올라가며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람은 손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지금은 사람 없이 자연환경에서 생존할 능력이 없어졌다고 한다. 비단을 얻기 위해 누에를 사육하는 것을 '양잠'이라 하는데, 이때 잠은 누에를 뜻한다. '양잠'은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었으며, 조선시대 개국 초에 반포된 공적인 법전이었던 경제 6전에는 큰 집에는 뽕나무 300그루, 중간 집에는 나무 200그루, 작은 집에는 뽕나무 100그루를 심도록 했다. 이를 어길 시 그 지역의 지방관을 파면했다고 한다. 또한 봄이 되면 조선시대 왕이 '선농단'에서 농사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백성들에게 직접 농사를 짓는 시범을 보이는 의식을 올렸는데, 그때 왕비는 '선잠단'에서 누에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며, 백성들에게 공을 따서 누에를 사육하는 시범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조선 시대 누에 키우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나라에서 전국 각 지역에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는 잠실을 두었다고 한다. 참고로 롯데월드가 있는 송파구 잠실이 이 잠실들 중 하나였다.

2. 누에의 활용

누에를 친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식용하게 된 것은 그다지 오래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1970년대 전반 누에 실의 수출액은 총수출액의 4% 내외 총 농림수산물 수출액의 40% 내외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 공장에서 엄청나게 나오는 번데기를 활용할 방법을 찾다가 조리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후 상황에 1960년대까지 아시아 최빈국이며 먹을 것이 없던 우리나라에서 번데기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으며 대중적인 음식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 번 큰 사건이 있었는데 1978년 번데기를 먹은 어린이들 37명이 중독 증세를 일으켜 10명의 사망자를 낸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때 번데기 자체에 문제가 아니 반대기를 담았던 포대에 맹독성 농약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농약 중독이 사건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유통업자들은 체포되었으며 이 사건 이후 번데기를 비롯한 길거리 식품들의 수요가 확 줄었다고 한다. 번데기 음식과 관련된 문제로 유통 과정, 조리 과정에 있지 사실 번데기 자체는 매우 위생적인 음식 재료라고 한다. 번데기는 환경에 매우 민감하다고 한다. 누에 다루기를 어린 아이 다루듯 신경을 써야 좋은 색과 질이나오고 좋은 실을 빼낼 수 있다는 이야기뿐 아니라 누에는 냄새에 민감하여 생리 기간 중의 여인은 누에를 키우는 잠실 출입을 금하였다는 얘기도 있다. 살충제, 모기향, 담배 연기에도 매우 약해 누에를 키우는 시설은 당연히 무농약 매우 위생적으로 관리된다고 한다. 이렇게 깨끗한 누에는 그 똥마저 동의보감의 한 방 약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술로 담가 먹는다고도 한다. 또한 우리 주변에 일부 녹차 아이스크림이나 초록색의 민트 껌에 색깔을 낼 때 누에의 똥의 원료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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