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맥주의 역사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자마자 발견한 어쩌면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도록 만든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초기 문명의 고대인들에게는 맛있는 빵이자 화폐처럼 쓰이기까지 했던 맥주는 지금과는 생김새나 맛이 매우 다르다. 지금 일반적으로 '맥주' 하면 떠올리는 '라거'라는 것인데 이 라거가 맥주의 메인을 차지한 역사가 아주 짧고 또한 라거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스토리가 있다. 맥주의 이야기는 '에일'과 '라거' 그리고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일단 고대 이집트에서 매우 귀한 대접을 받던 맥주는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와인보다 급이 떨어지는 술로 여겨졌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인이 맥주를 마시는 이유는 단지 이집트에 포도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단언했고 로마에서는 맥주를 불치병을 유발하는 이집트의 차갑고 탁한 음료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유럽 남쪽에서 맥주를 한창 까고 있을 때 유럽 북쪽의 영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특이한 형태의 맥주가 발전해 오고 있었다. 고대 영국에서는 야생 벌꿀이 풍부했고 토착 '켈트인'들은 이를 발효시킨 '미드'라는 술을 많이 마셨는데 인구가 늘어나고 삼림이 벌채되며 야생 벌꿀이 점차 부족해지게 되었다. 거기다 벌꿀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귀중한 감미료였기에 벌꿀 주 미드의 제조는 더욱 어려워졌고 이에 켈트인들이 꿀의 대용품으로 찾아낸 것이 당분을 합류하고 있는 바로 발화시킨 곡물이었다. 곡물을 섞은 새로운 벌꿀 주를 만들어 냈지만 맛은 순수한 벌꿀로만 만든 원조 미드에 비해 훨씬 떨어졌고 따라서 곡물이 섞인 미드는 일반 서민을 위한 술, 원조 미드는 상류층을 위한 술이 되었다. 그리고 이 두 미드를 구별할 말이 필요해졌는데 이때 곡물이 섞인 미들을 '에일'이라 부르게 된다. 이후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유럽은 게르만 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영국은 게르만족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의 지배받게 되는데 이때부터 에일이 다시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8세기가 되면 게르만 민족을 통일하여 대제국을 세우고 로마 교황으로부터 관을 받아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까지 즉위한 카롤루스 대제가 등장한다. 그는 맥주는 질보다 양이라며 큰 잔으로 맥주를 마시던 맥주를 각별히 사랑한 인물이었다. 와인과 더불어 유럽을 대표하는 술로 자리 잡게 된 맥주는 중세를 거치며 수도원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중세 유럽에서 당시 최고 두뇌 집단이었던 수도사들은 원료를 계량화하고 여러 실험을 통해 맥주 양조를 체계화했으며 거기다 교양이 뛰어났던 이들은 고문서를 해독하여 맥주 양조 기술과 비법을 찾아내 품질이 뛰어난 맥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수도원에서 만든 맥주는 일반인들이 만든 맥주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맛이 좋았고 이를 마신 몇몇 사람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지금 맥주의 독특한 쓴맛과 향을 내는 '홉'이라는 것이 사용된 것도 수도원 맥주에서 시작되었다. 이 '홉'이 사용되기 이전에도 맥주의 맛과 향을 내기 위해 다양한 약초와 향료들을 사용했는데 이것을 그루트라고 했다. 벚꽃 가루, 생강, 호두나무 열매, 감초 꽃잎 뿌리 등 정말 다양한 재료들로 만든 것이 '그루트 맥주'였다. 약초에 대한 지식도 뛰어났다. 수도사들은 꽃이란 식물을 넣어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때 '홉'은 기존의 그루트에 비해 훨씬 상쾌한 쓴맛이 났고 미생물에 대한 항균 효과까지 있었다. 맥주가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뛰어났다. 맥주의 맛과 보존성까지 획기적으로 높여준 훌륭한 홉이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홉에 대한 거센 반발이 있었다. 특히 영국이 그랬는데 당시 유럽에서 맥주 양주 원탑으로 칭송받던 영국에선 오랜 세월 동안 그루트만을 사용해 에일을 빚어왔고 그루트에 얽힌 여러 업자 간의 이해관계가 있었기에 홉이 늦게 들어오게 된다. 영국인들 입장에서 홉을 사용한 맥주는 완전 새로운 음료였고 이를 '비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즉, 그루트를 사용했던 기존 정통 맥주를 에일 홉이 들어간 새로운 맥주를 비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곧 홉이 들어간 비어의 훌륭한 맛과 그 보존성에 매료되었고 이후 영국의 모든 에일에는 홉이 들어가게 되었으며 비어는 모든 맥주를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 잡게 된다. 19세기까지 유럽에서 맥주라고 하면 영국의 '에일'을 의미했고 영국의 에일 제조법 맥주 양조 기술의 모범이었기에 유럽 각국의 맥주 양조가들이 기술을 배우러 영국으로 떠날 정도였다.
2. 저온 숙성을 하는 이유
남독일에서 우연히 획기적인 맥주가 탄생하였는데 바로 저온 숙성 맥주였다. 당시 유럽의 맥주 에일은 상온에서 발효시키는 음료였고 따라서 잡균이 혼입되어 산패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여름이 무지하게 더웠던 남독일에서 맥주 산패 위험이 더욱 컸고 어쩔 수 없이 추운 겨울에 맥주를 담근 뒤 서늘한 동굴에 얼음을 채워 넣어 보관했다고 한다. 다시 맥주를 담글 수 있는 겨울이 오기 전까지 동굴 속 맥주를 장기간 보관하였고 이때 저온에서 천천히 숙성된 새로운 맥주가 생겨났는데 이것이 바로 화면 발효 맥주 즉 라거의 탄생이었다. 이는 기존의 에일을 만들어내는 상면 발효 효모와는 특성이 다른 저온에서 활동하는 하면 발효 효모 덕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효모의 존재를 아예 몰랐고 따라서 라거의 탄생은 우연한 것이었다. 남독일 바이에른 지방에서 우연히 발견돼 이 저온 숙성 맥주는 영국의 에일에 비해서는 듣도 보도 못한 맥주였지만 엄청난 잠재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산패 위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맥주의 메인이었던 에일은 양조 성공률이 높게 잡아야 80%였다고 한다. 양조장 100곳 중 20곳의 맥주가 산패했다는 것인데 양조장이 치명적 유해균에 감염되면 손 쓸 도리가 없이 맥주를 전량 폐기해야 했고 즉 매년 맥주 양조장 중 20%는 폐업 위기에 몰렸다는 것이다. 근데 저온 숙성 맥주는 산패 위험이 거의 없었고 양조 성공률이 100%에 가까웠는데 이는 맥주 양조가들 입장에선 꿈같은 일이었다. 이 새로운 맥주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양조가들이 주목을 받게 되고 또한 장기간 저장하는 것이 특징이었기에 '저장하다'라는 뜻의 독일어'라건'을 써서 '라거'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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