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을 대표하는 고기 삼겹살은?
돼지고기란 삼겹살 수육이나 김치찌개나 양념에 볶은 복잡한 형태가 아닌 뜨거운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단순한 구이 형태의 삼겹살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된다. mt와 캠핑의 대미를 장식하는 바비큐의 꽃이 바로 삼겹살이며 고된 하루를 직장인들의 회포를 풀어주었던 것이 소주와 삼겹살이었던 만큼 한국인의 소울푸드라고 부를 만한 것이 바로 삼겹살이다. 한편 우리가 삼겹살을 즐기게 된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 삼겹살을 뜻하는 '새벽 살'이란 단어도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문헌에 등장하게 된다. 의외로 조선 시대에 돼지고기에 대한 선호도가 상당히 낮았다. 조선 전기 중국에 통역으로 다녀온 한 관리가 보고하기를 중국 황제가 내관을 불러 '조선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쇠고기와 양고기를 공급도록 하라'라고 했으며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는 하루가 다 지나도 돼지고기는 팔리지 않고 남았다. 이는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쇠고기가 유난히 많기 때문이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처럼 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사랑했던 고기는 돼지고기가 아니라 소고기였다. 한편 고기에 대한 선호도는 낮았더라도 조선시대 돼지는 국가 차원에서 열심히 기를 정도로 중요한 가축이었는데 돼지가 중요했던 이유는 첫 번째, 조선과는 달리 돼지고기를 워낙 좋아했던 중국 사신들을 대접하기 위해서이며 두 번째, 왕실의 제례에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돼지 사육과 관련한 흥미로운 기록들이 나타나는데 첫 번째 중국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우리나라 토종 돼지를 기르는 데 있어서 조선 왕실이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는 것, 두 번째 왕실 제례에 사용할 것으로는 중국에서 따로 들여온 품종인 '당저'라는 돼지를 길렀는데 이 당저가 우리나라 토종 돼지와 섞여 잡종이 되지 않게 철저히 관리했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핑크빛으로 푸짐하게 생긴 돼지와 달리 우리나라 재래돼지는 약간 큰 개 정도의 크기였다고 하는데 보통 22kg 정도 커봐야 37kg 정도로 외소하였으며 거기다 성장하는 속도도 느렸기 때문에 고기를 생산하는 데 있어 효율이 떨어졌고 왕실의 제례에 쓰기에도 부적합한 품종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만성이 부족했던 이 자그마한 재래돼지에서는 삼겹살이 형성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조선말 미국과의 통상조약 체결 이후 1885년 서양 품종의 돼지가 처음 들어온 것을 기점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여러 가지 계량 종 돼지들이 도입된 1930년대에 이르면 이 돼지들이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31년 조선요리제법이란 문원에 '세겹살'이란 단어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배에 있는 고기', '근육 중에 제일 맛있는 고기'라는 지극히 마땅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즉 돼지가 커지면서 삼겹살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의 육식은 경성과 평양 등 대도시 일부 계층에 한정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우리나라 일반 국민이 소비할 수 있었던 육류량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는데 때문에 구워서 먹기에는 고기가 너무 부족했고 대신 고기로 국물을 내서 먹는 탕 위주의 소비였다고 한다.
2. 삼겹살이 한국을 대표하기까지
이후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가축들이 거의 전멸 상태에 이르렀는데 돼지의 경우도 양돈업 자체가 파괴될 위기까지 전쟁 이후 외국으로부터 돼지를 비롯한 각종 구호물자가 들어온 것과 더불어 정부의 '축산 부흥 계획' 등을 통해 돼지들이 늘어났고 세겹살 즉 삼겹살도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면 돼지고기 요리의 재료로 삼겹살을 소개하는 기사들이 여럿 등장하고 심지어 1976년에는 20여 분에 걸려 간신히 끌어올린 51cm짜리 붕어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데 '회로 친 붕어가 마치 돼지고기 삼겹살처럼 기름이 풍부하여 맛이 일품이었다'라는 삼겹살의 기름에 대한 극찬까지 나타난다. 이 당시의 삼겹살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어딘가가 부족한 삼겹살이었는데 삼겹살이 취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뜨거운 불판 위에서 자글자글 익어가는 형상이다. 그러나 당시 나타나는 삼겹살의 조리법은 푹 삶은 수육이나 조림, 볶음과 같은 강한 양념을 더한 것들이었는데 이에 대해 삼겹살의 시작 그리고 대한민국 돼지 사업 두 책에서는 미비한 돼지 사육 기반에 따른 돼지고기의 냄새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거세하지 않은 수태지는 뭉치라고 불리는 불쾌한 냄새를 내며 또한 가축의 사육 목적에 맞는 배합사료를 사용하지 않고 짬밥이나 구정물로 돼지를 키우던 부업 양돈들이 다수였던 상황에서 돼지고기는 바람직하지 못한 풍미를 품고 있었다. 이러한 돼지고기를 아무런 과정 없이 그냥 불에 굽게 되면 바람직하지 못한 풍미가 더욱 강렬하게 확산하였기에 돼지고기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삶는 조리법과 생강 마늘과 같은 강한 양념들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소 열악했던 양돈 산업은 점차 발전하여 삼성을 필두로 한 기업형 양돈이 등장하기에 이르렀고 또한 1970년대에는 일본으로의 돼지고기 수출이 이루어지며 양돈 산업이 급격히 발달하게 된다. 특히 수출용 돼지의 품질을 높이는 과정에서 곡물 사료와 거세 등 과학적인 사육 기법이 도입되며 돼지고기의 잡내가 확 줄어들었는데 즉 이제 삼겹살은 그냥 불판에 굽기만 해도 완성되는 돼지의 가장 맛있는 부위이자 간편하기까지 한 새로운 음식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삼겹살은 1970년대 말부터 외식 메뉴로 자리 잡기 시작하여 1980년대 중반이 되면 온 국민이 구워서 먹는 고기가 되었고 현재는 한국을 대표하는 고기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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