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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음식 카레의 기원과 어원

by 다솜솜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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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레의 기원

카레의 기원은 인도이다. 근데 문제는 인도에는 딱 '카레'라는 일품요리 형태의 음식이 없다. 인도는 전 세계 수많은 향신료가 원산지이며 또한 대부분의 지역이 열대 기후에 속하는 덥고 습한 나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 사람들은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게 하는 또 고기의 잡내를 잡아주는 심지어 강장 효과까지 있는 향신료 사용법을 오랫동안 익혀왔다. 인도 가정에서는 향신료들을 직접 갈아 으깨어 쓰는데 이렇게 미리 섞어둔 배합 향신료를 '마살라'라고 부르고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카레 가루'의 원형이다. 보통 인도 주부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향신료가 20종류에 달한다고 하며 배합하는 향신료 종류는 각 가정의 취향마다 다른 데다 으깨는 방법의 차이까지 있다고 한다. 만드는 사람 수만큼 마살라가 존재하는 인도 요리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 마살라이며 우리나라의 된장, 간장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면 된다. 인도에는 카레라는 명칭 혹은 그런 요리가 없으며 원래는 잊지도 않은 카레라는 단어가 제멋대로 굳어진 것이다.

 

2. 카레의 어원

카레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이 '타밀어 기원설'이라고 한다. 남인도의 언어 '타밀어'에는 무언가에 끼얹어 먹는 소스를 의미하는 '카리'라는 단어가 있는데 대양의 시대 무렵 이 '카리'라는 단어가 밥에 수프를 부은 인도 음식을 대표하는 이름인 것처럼 서양인들에게 전해져 카릴로 기록이 되었고, 이후 유럽에서는 영어 커리의 음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애매모호한 단어가 카레이다. 정리하자면 원래 인도에는 카레라는 음식이 배합된 향신료 마살라를 사용한 다양한 요리들이 있었을 뿐이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던 시절부터 영국과 인도는 교류가 활발했고 이때 향신료를 쓴 인도의 스튜 비슷한 음식들이 커리라는 총칭으로 영국에 전해지게 된다. 한편 영국에서는 인도에서처럼 다양한 향신료를 구할 수 없다는 점, 또 영국인들은 향신료를 조합하는 노하우가 없다는 문제가 있었고 이 때문에 영국에서 발명된 것이 커리 파우더 즉 카레 가루였다. 지나치게 이국적인 맛과 향을 줄이고 영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배합한 향신료 가루가 커리 파우더였으며 적당히 가루를 넣어주기만 하면 완성되는 극도의 간편성 때문에 커리라는 것이 영국에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커리가 일본에 전해져 카레로 변형된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근대국가들을 모델로 개혁을 추진했으며 육식을 비롯한 많은 서양 음식들을 도입하였는데 이 서양 요리 중 하나로 들여온 것이 카레였다. 일본에 들어온 카레는 화양 절충 요리 즉 서양 요리와 일본 요리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카레라이스라는 이름으로 일본 국민 음식으로서 자리 잡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카레라이스라는 음식이 일본인들에게 퍼지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군대였다는 것이다. 일본의 가난한 농촌에서는 밥을 충분히 먹을 수 없었고 그마저도 잡곡, 보리 등을 섞어 먹었기 때문에 농어촌 청년들에게 쌀밥을 실컷 먹을 수 있는 것 자체 큰 혜택이었다. 그런데 곧 큰 문제가 터졌는데 바로 각기병이 대량 발생한다. 비타민을 함유한 부분이 다 제거돼 고정된 백미만 먹던 병사들이 각기병에 걸렸던 것이다. 1878년 일본 해군 약 4500명 중 1500명가량이 각기병 환자였다. 1882년 항해 중에는 승무원의 절반 정도가 각기병에 걸릴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유학을 다녀온 해군 군의관이 '다카기 가네히로'라는 인물이 각기병을 해결하고자 면밀히 조사를 시작했고 그는 병의 원인을 단백질 부족으로 판단하여 단백질이 풍부한 서양 음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사실 각기병의 원인은 단백질 부족이 아니라 비타민의 부족이었지만 당시엔 비타민의 존재를 몰랐고 또한 육류, 콩 등의 서양식에는 비타민 b군이 풍부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각기병 문제가 해결되긴 했다. 하지만 병사들이 원성이 자자했는데 귀한 쌀밥을 실컷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왔더니 난데없이 빵이나 고기 같은 생소한 서양 음식을 먹게 했다는 것이다. 다카기 가네이로는 단백질이 풍부한 보리를 쌀과 섞은 밥을 해결책으로 내놓았지만 병사들은 가난한 고향에서 먹던 밥이랑 뭐가 다르냐며 또 화를 냈다. 각기병 퇴치와 동시에 해군 병사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 속에서 카레가 들어오게 되었으며 병사들 입맛에 맞았는지 카레는 끝까지 살아남아 밥에 부어 먹는 카레라이스 형태로 군 식단에 포함이 된다. 입대하여 처음으로 카레를 경험했던 일본 청년들 그리고 이들이 제대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카레를 전파한 것이 일본의 카레가 퍼져나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카레라는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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