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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동반자 커피의 전파

by 다솜솜 202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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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커피의 전파

에티오피아인들은 커피를 갈아 버터 같은 동물성 지방과 섞어서 에너지 바로 만들어 먹었다. 그것은 아마도 최초의 커피 레시피였을 것이다. 7세기부터 17세기까지 약 1천 년 동안 커피는 무슬림들의 전유물이었다. 525년 에티오피아는 예멘 지방을 침략한다. 추정하는 바에 따르면 바로 이때 커피나무가 예멘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예멘에서도 커피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610년 무함마드는 이슬람교를 창시했고 커피는 무섭게 확장하던 이슬람 제국의 등에 올라타 시리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로 전파되었다. 이 커피는 모카커피라고 불렸다. 에티오피아와 예멘에서 생산된 커피가 일단 모카항에 집결한 뒤 각지로 수출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커피콩을 로스팅하게 된 게 바로 이 수출 때문이다. 예멘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수출품이었던 커피의 종자 유출을 엄격히 금했는데 커피콩 커피 원두라고 흔히 말하긴 하지만 커피는 엄연히 열매 안에 들어있는 씨앗이다. 그래서 종자 유출을 막기 위해 커피를 볶아서 팔기 시작했고 로스팅의 전통이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커피는 점점 퍼져 16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1554년 세계 최초의 카페 터키어로 말하면 카오베카네가 비슷한 불에서 문을 연다. 카오베카네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었지만 그저 커피만 마시지는 않았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듣고 공연을 관람하고 체스를 두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스탄불에 주재했던 유럽의 외교관들도 이곳에서 커피를 맛보았다. 그리고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상당한 커피 홀릭이 되어 있는 사람도 있었다. 커피는 그렇게 점점 유럽에 알려졌었다.

 

2. 커피의 유럽 역사

커피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는 과거 600여 년간 치열하게 쌓아온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유럽인들은 커피를 사탄의 음료라고 부르기도 했고 무슬림들이 개발한 독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1603년 교황 클레멘스 8세가 나선다. 교황은 직접 커피를 마셔보고 그 맛에 반해버린다. 이 사탄의 음료는 너무 맛있어서 이걸 이교도들만 먹게 놔둘 수가 없다고 하면서 커피를 금지하기는커녕 커피의 세례를 내려 커피를 기독교인의 음료로 공인해 버린다. 이때부터 유럽인들이 본격적으로 커피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1615년부터 베네치아 상인들은 커피를 수입하기 시작했고 유럽 전역으로 수출했다. 중세 시대 유럽은 언제나 술에 취해 있었다.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와인이 종교의식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당시 유럽에서 알코올 중독은 꽤 큰 사회적 문제였다. 커피는 유럽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17세기 초부터 유럽에 생겨나기 시작한 카우베카네 커피 하우스에선 학구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작가 정치인 기업가 과학자들이 커피하우스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커피하우스의 확산은 그 수요를 충당할 만큼 커피가 충분히 공급되었기에 가능했다. 모카커피의 생산량만으로는 부족했다. 당대의 상업 강국이었던 네덜란드가 나선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식민지로 삼고 그곳에 대규모 커피 농장을 건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바 커피의 생산량은 모카커피의 생산량을 훌쩍 뛰어넘었다. 모카커피와 자바 커피의 이중 공급이 있었기에 커피 문화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질 수 있었다. 커피와 사랑에 빠진 사람 중에는 프랑스인들도 있었다. 그런데 18세기 파리의 카페에서 커피 말고도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사람들의 분노였다. 당시 프랑스에는 크게 두 개의 세력이 대립하고 있었다. 귀족으로 대표되는 중세 시대부터 내려온 구 세력 그리고 부르주아로 대표되는 근대 들어 상공업으로 부를 거머쥔 신흥세 파리의 카페에선 귀족들의 특권에 분통을 터뜨리는 부르주아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의 일부를 세금으로 꼬박꼬박 받치는데 귀족들은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놀고먹는 게 안 잊고 왔던 것이다. 파리의 카페는 경제적 불만을 정치적 불만과 만나게 해 주었다.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데 특화된 사람들이 커피를 홀짝이면서 경제적 불만을 자유와 평등이라는 정치적 주장으로 연결 짓는다. 경제적 불만이 정치적 불만과 만나자 대폭발이 일어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혁명 이후 프랑스 의회는 본권적 특권의 폐지를 선언했고 이어서 인권 선언을 발표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또한 살아가는 동안 자유이며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오늘날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가치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명문화되었다. 카페는 혁명의 대학이었다. 유럽인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방법을 훈련했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각성한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를 발견해 낸다. 커피는 중세를 끝내고 근대를 연 새 시대의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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