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밥의 시초
한국인들 사이에서 밥은 꽤 자주 오르내리는 대화 주제다. 만났을 때는 "밥 먹었니?", 헤어질 때는 "밥이나 한번 먹자"라고 말한다. 이 밖에도 "밥값을 해야지", "이게 네 밥줄이야", "콩밥 한번 먹고 싶니?",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 등 밥을 활용한 표현은 엄청나게 많다.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밥에 집착하는 걸까? 밥이란 무엇일까? 흔히 밥이라고 흰쌀밥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실 밥은 여러 곡물의 알곡을 통째로 익힌 음식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각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곡물에 따라 조밥, 보리밥, 메밀밥 등 밥은 다양하다. 한반도에서 농사가 시작된 것은 약 5천 년 전이지만 밥이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알곡을 통째로 삶으려면 높은 온도나 압력이 필요하다. 농사가 시작되었을 때 가장 일반적인 조리 도구는 흙으로 빚은 토기이었고 토기는 열전도율이 낮은 데다 그다지 단단하지도 못해서 밥을 지을 만한 온도나 압력을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곡물을 알곡재로 삶는 대신 알곡을 잘게 으깨어 토기에 넣었고 여기에 물을 부어서 끓이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반도 사람들이 곡물을 이용해 만든 첫 번째 요리는 죽이었다. 그렇다면 알곡을 통째로 익히는 음식, 밥이 등장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일단 흙으로 만든 토기가 아니라 청동으로 만든 솥이 필요하다. 청동 솥은 토기보다 단단하고 열전도율도 좋아 알곡을 통째로 익힐 만큼의 열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솥에 물을 붓고 그 위에 시루를 얹어서 불을 때면 증기가 올라와 시루 안에 들어있던 음식물들을 찔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밥의 최초 레시피였을 거다.
2. 부드러운 밥은 언제부터일까?
하지만 이렇게 밥이 등장했다고 해도 당장 모두가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청동의 원료가 되는 구리나 주석은 매장량이 아주 적었기 때문에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청동을 사용할 수 있었고 청동 솥으로 지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밥은 권력의 음식이었다. 밥의 대중화는 청동이 아니라 철과 함께했다. 철은 청동과 비교했을 때 아주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녹이 잘 슨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단단하면서도 매장량도 많아 대량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동남쪽에 치우친 작은 나라였던 신라가 6세기 들어 한반도의 주도 세력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도 주요 철광들을 확보하면서 군사력을 강화했던 사실과 관련이 있다. 이후 신라에서는 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솥도 철로 만든 솥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무쇠솥의 보급은 다른 방식으로 밥 짓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청동은 장작불로도 녹일 수 있을 만큼 열에 약했던 반면 철은 열에도 강하다. 알곡을 증기로 찌는 게 아니라 펄펄 끓는 물에 알곡을 넣고 오랫동안 삶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후 철의 보급은 더욱 확대되고 10세기 초 신라를 대신해 한반도의 새로운 패자가 된 고려는 전국의 제철소를 건설해 운영했다. 그래서 13 세기말쯤 되면 무쇠솥도 꽤 일반적인 물건이 되었다. 그리고 무쇠솥의 보급은 밥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것이 곧 쌀밥의 대중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밥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고 한반도의 대중이 먹었던 밥은 쌀밥이 아니라 소위 잡곡밥이라 불리는 음식들이었다. 애초에 한반도는 쌀밥을 먹기에 유리한 곳이 아니다. 벼는 양지강과 갠지스강 사이에서 장물화 되었다고 여겨지고 실제로도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데 한반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위도에 춥고 건조한 기후를 가졌기 때문에 쌀 생산량을 늘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밥이 권력의 음식에서 대중의 음식이 된 이후에는 쌀밥이 권력의 음식 자리를 차지했다. 한반도에서 밥의 대중화가 잡곡밥 위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한반도 소태 형태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반도의 전통 무쇠솥이 다른 나라와 분명하게 구별되는 지점은 무엇일까? 일본의 솥뚜껑은 나무로 만든다. 그런데 한반도의 솥뚜껑은 철로 만들어서 매우 무겁다. 이렇게 육중한 솥뚜껑은 잡곡처럼 거친 재료로 밥을 지어야 했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부드러운 밥을 짓고자 했던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솥뚜껑은 그 무게로 솥을 꽉 눌러 손 내부의 압력을 높인다. 그러면 곡물을 고온에서 빠르게 익혀 훨씬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또 곡물에 있던 전분도 포도당으로 잘 분해되어 단맛도 은은하게 도는 밥이 만들어진다. 한편 저수지를 증설하고 모내기법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한반도의 쌀 생산량은 꾸준히 늘었는데 18세기 초부터는 쌀밥 구경하기가 조금은 수월해진 시대가 찾아왔다. 잡곡으로도 먹을 만한 밥을 지었던 한반도의 무쇠솥이 부드러움의 끝판왕이라 할 만한 흰쌀과 만났을 때 그 밥맛은 얼마나 좋았을까 이후로도 보릿고개는 자주 찾아왔고 한 해 농사를 망칠 때면 그조차 먹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지만 어느덧 이 세상은 밥이 넘쳐 나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변한 세월만큼 전기밥솥이나 압력솥, 전기압력밥솥처럼 현대화된 솥들도 많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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